
전통불화작가 박정자
보통 단청(丹靑)이라 하면 사찰이나 관아 건축물에 만다라 문양을 넣고 채색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이 단청에는 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포함된다. 그것이 그림으로 전각 안에서 불전을 장엄하는 것이 되면 불화라 하고, 그 안에는 부처님을 그린 탱화와 역대 조사나 선인들의 영정이 포함되며, 건물에 채색하면 단청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단청장 설명
만하(卍霞) 박정자(朴亭子)는 단청장으로서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1975년 당시 전국의 내놓으라는 금어승(金魚僧)가운데 가장 먼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으로 지정받은 서울 봉원사의 만봉(卍奉 이치호)스님의 불화 전시회를 본 후 그 문하에 입문하여 줄곧 탱화 작업을 해온 여류 불화가다.
입문 당시 여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정진하여 전승공예대전에서 미세하게 분쇄한 순금가루를 어교(접착제)에 개어서 세필로 그린 ‘금니부모은중경’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대단히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녀가 불러 일으킨 센세이션은 당시 여성들이 집안에서 집안일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는 등의 일 외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녀가 만봉스님의 불화전을 관람하고 입문을 결심하게 된 것은 여백을 중시하는 문인화를 배우다가 여백 한 점 없이 빽빽이 들어찬 화려한 채색의 불화를 보고 문인화에서 무엇인가 허전했던 점을 불화에서 되찾았다고 생각하면서였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이화여대 뒤편에 있는 봉원사 오르는 길을 만봉스님의 제자로 십년을 하루같이 올라다녔다.
대체로 그림이든 조각이든 부처님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일컬어 불모(佛母)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불모는 모두 남성의 역할이었다. 여성의 몸은 부정하다는 것이 기존의 종교적인 통념이었기 때문이다. 탱화를 제작할 때 넓은 베에 아교를 포수하여 바닥에 펼쳐놓고 하기 때문에 부정한 여성이 부처님을 올라타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으로서는 박정자가 맨 처음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닌 불모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그래서 기존의 관념을 깨는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그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후보로 지정을 받았다.
그녀가 하는 작업이 공예에 속하는 작업이지만 이처럼 기존의 관념, 당시로서는 여성이 불화를 그린다는 일은 거의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금기를 타파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예술가로 인정하기에 아무런 주저함을 갖지 않는다.
또한 불화를 그리는 작업은 말 그대로 부처님 그리는 작업이다. 불모가 탄생시킨 부처님 그림은 절간 삼존불 뒤에 후불탱화로 걸려 신도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가정에 신도들이 모셔가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후불탱화만 하더라도 절간의 삼존불 뒤 벽바탕에 그대로 벽화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그대로 전소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츰 변천과정을 거쳐 현재는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부처님 뒤에 걸려지고 있다.
이러한 탱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밑그림 위에 화선지를 놓고 수천 수만 장씩 반복해서 그리는 것이 처음 단계다. 이 단계를 ‘등긋기’라고 하는데, 밑그림 없이 자유자재로 축소와 확대를 반복해서 그리는 단계까지 가면 탱화 제작에 들어간다. 바탕 재료는 명주나 삼베 광목을 사용하며 틀에 단단히 묶은 다음 여기에 아교를 포수하고 초를 그린다. 다음에는 채색을 입히고 다시 먹선으로 마감한 후에 액자나 틀로 다시 고정시켜 완성한다.
탱화의 종류를 보면 우선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를 주관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존으로 하는 ‘미타회상도(彌陀會相圖)’, 삼불회도(三佛會圖,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역사여래를 그리기도 하고, 법 그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로사나불을 그리기도 한다)가 있다. 또한 명부전에 그리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시왕(十王)을 그린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각 불보살(佛菩薩)을 따로 그린 독존도(獨尊圖),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을 그린 신중탱화(神衆幀畵), 불교가 전래되어 각국의 신앙을 포섭한 칠성탱화(七星幀畵)와 산신도(山神圖), 조왕탱화등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우리 조상들의 모습으로 조성된 빼놓을 수 없는 탱화가 있는데, 이것은 감로왕탱화(甘露王幀畵)로 조상들의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비는 의미가 있다. 이 감로왕탱화는 순수하게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탱화로 일곱부처와 지장보살, 시왕, 영가(靈駕)를 영접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생활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그림이다. 원래 감로왕탱화의 도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죽은 부모를 찾아보니 어머니가 아귀지옥(몸은 거대하지만 목이 가늘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니 7월 15일 세간의 맛있는 음식을 대덕스님에게 공양하라고 하여 행하니 어머니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탱화다. 대덕스님에게 공양을 하면 몸을 거대하고 목이 가늘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사자(死者)에게는 감로(甘露)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인데, 음력 7월15일 백중날에 행하는 행사를 우란분재라 하고 우란분재와 관련이 깊은 것이 바로 이 감로왕탱화다. 그 외 형태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괘불(掛佛)이 있는데 이는 법당 밖에서 대규모 법회를 행할 때 사용되는 커다란 탱화다.
현재 박정자는 1997년 12월 원래 나주시 산정동에 화실을 열고 제자들과 함께 불화 제작에 여념이 없다.
(나주시 산정동, ☏333-4472)